경종은 왕세자 시절에도 당쟁에 휘말렸습니다. 갑술환국으로 생모가 빈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왕비에서) 숙종이 그의 생모에게 신당을 만들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명으로 자진하라는 비망기를 내렸습니다. 왕세자의 생모와 삼촌에 대한 처벌 문제를 놓고 왕세자에게 동정론을 펴는 소론과 노론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숙종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 정파 간의 갈등이 커졌는데, 1746년 숙종 42년 숙종의 병신처분으로 노론이 정국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조선시대 18세기 왕들의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숙종의 맏아들이며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로 소론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노론 우세, 건강문제로 왕세제 책봉이 있었습니다. (연잉군 → 노론 건의 ☞ 소론, 노론 갈등) 이로 인하여 경종 때 신축옥사와 임인옥사가 일어납니다.
1-1. 신축옥사
경종 때 연잉군 대리청정 문제로 노론 vs 소론의 권력다툼 문제로 발생하였습니다. 경종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경종은 숙종의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인 장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받고 있다가 총애를 잃으면서 경종의 지위도 위태해졌습니다. 또한, 경종은 건강도 좋지 않아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론과 소론 사이에 대립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연잉군은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노론과 소론의 갈등은 계속되었습니다. 신축옥사에서 소론 측 인사들을 노론 측이 거의 체포하고 처벌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종의 지지 세력이었던 소론 측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 약화된 틈을 타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종은 재위 4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망하였고, 이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신축오가에 대한 조사가 취조되었습니다. 영조는 노론 측의 조작으로 신축옥사가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였고, 소론 측 인사들이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결론은 노론과 소론 사이의 갈등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의 정치사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1-2. 임인옥사
임인옥사는 경종 2년 1722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원인은 소론과 노론의 당쟁이 원인이었습니다. 노론은 경종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영조(연잉군)를 왕세자 책봉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에 따라 소론이 격하게 반대합니다. 하지만 1721년 영조(연잉군)가 왕세자로 책봉되자, 노론은 왕세자의 대리청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소론은 경종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것으로 여겨 대리청정은 절대 반대합니다. 1722년 노론 측에서 경종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묵호령의 고변을 계기로 임인옥사가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노론 4 대신 김창집, 조태채, 이건명, 이이명이 사사당합니다. 그리고 많은 노론 인사들이 처벌을 받습니다.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임인옥사는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이후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경종이 병에 걸리는데 이때 연잉군(영조)이 올린 간장게장과 감을 먹고 급사하면서 연잉군(영조)은 독살설에 대한 의혹을 받게 됩니다. 이는 이인좌의 난 배경이 됩니다. 결국 경종은 사망합니다.
2. 천민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일생을 스트레스로 지낸, 21대 왕으로 가장 오래 재위한 왕 영조
영조는 1694~1776년 조선의 21대 왕으로, 1724년부터 76년까지 51년 7개월 동안 재위한 장수왕입니다. 출생은 1694년 숙종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머니는 숙빈 최 씨로 7세 때 무수리로 궁에 들어왔습니다.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아 즉위합니다.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이 (1728) 일어납니다. 소론 + 남인의 주도로 경종 죽음의 배후에 영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영조의 도덕성에 타격을 줍니다. 이인좌의 난 이후 발표가 되는데 모든 당에 역적, 충신이 있으므로 각 붕당의 인재를 모두 등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로 인해 탕평책이 실시됩니다. 이를 기유처분이라 합니다.(1729) 영조는 탕평책을 펼치는데 완론탕평(소극적 탕평)을 펼칩니다. 탕평비(성균관 입구에)를 건립하고, 서원을 정리하며(산림부정), 이조전랑직의 권한을 폐지합니다. 후임자 천거권을 폐지하고, 관습적 3사 선발권도 폐지합니다. 서원정리는 붕당의 근거지를 제거, 산림(재야 사림의 우두머리, 여론을 주도)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한계는 강력한 왕권으로 붕당 사이다툼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노론 우세 시파와 벽파의 대립을 가져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회 정책으로는 사형수 3 심제강화(=삼복법), 신문고 부활,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수입해 옵니다. 청계천 준설공사로 준천사를 설치합니다.(1760) 기로과를 설치하여 60세 이상 선비들 대상으로 시험을 보게 하여 관리 재등용의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3대 폐단 '붕당', '음주', '사치'를 지정합니다. 노비공감법은 노비들의 공납품(신공)을 반으로 축소합니다. 그리고 노비종모법을 시행으로 노비의 소생은 엄마 신분을 따르게 합니다. 통청윤음은 서얼들의 문과 응시, 청요직 진출을 허용합니다. 경제 정책으로는 균역법을 실시합니다.(1750) 수성윤음을 반포하고(1751),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한성(도성)을 방어합니다. 편찬 사업으로는 숙대전(법전, 경국대전의 속편), 동국문헌비고(한국학 백과사전), 속오례의(국가 왕실 의례서), 병장도설(군사 훈련 지침서), 무원록(법의학서), 여지도서(지리서), 반계수록(유형원), 해동지도, 동국여지도(신경준)가 있습니다.
3. 만천명월주인옹의 별명을 가진 왕 정조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만천명월주인옹'의 별명을 가진 왕입니다. 탕평책을 실시하고, 수원 화성을 건설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뤘습니다. 정조는 1776년부터 1800년까지 24년간 재위했습니다. 정조는 준론탕평(각 붕당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명백히가리는 적극적인 탕평정치)을 펼칩니다. 준론 탕평은 당색 강화 즉 시시비비를 명백히 합니다. 임오화변 이후 노론 벽파의 정국이 주도하며, 벽파(+척신, 환관 제거)를 제외한 모든 당파(남인, 소론, 노론일부 즉 이를 시파라부름)를 등용합니다. 시파를 등용하며 남인(채제공, 정약용)을 등용합니다. 탕평현판은 탕탕평평실 창덕궁 주합루(규장각)에설치합니다. 왕권 강화책으로 군주도통론, 만천명월주인옹, 규장각 설치, 검서관, 장용영 설치, 초계문신제, 이조 전랑의 권한을 완전히 제거, 수령의 권한 강화, 문체반정(1794)등이 있습니다. 문물 정비로는 수원 화성 건립으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적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현룡원 참배, 설립 시에는 거중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수원 화성은 도시뿐만이 아니라 공격 기능과 동시에 방어 기능도 함께 합니다. 행차에는 격쟁, 배다리 건립도 있습니다. 대유둔전(국영 농장), 만석거도 설치합니다. 이는 수리 시설입니다. 정조 때 「고금도서집성」을 수입하는데 이는 중국의 동양 최대 백과사전을 의미합니다. 정조 때 난전이 등장합니다. 이로 인해 시전 상인이 타격을 입습니다. 시전의 금난전권 획득으로 물가가 폭등하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이로 인한 정조의 반격으로는 통공 정책 즉 "신해통공" 금난전권 폐지입니다. (but 육의전은 제외입니다.) 이로 인해 물가안정, 자유 상공업을 활성화시킵니다.
3-1. 정조의 편찬 사업
- 일성록 : 정조의 일기를 적어놓은 책입니다. (정조~1910. 한일 합방 전) 유네스코 기록 유산입니다.
- 대전 통편 :무전서 : 정조의 개인 시문집입니다.
- 무예도보통지 :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 종합 무예서입니다. ← 척계광의 「기효신서」
- 동문휘고 : 외교문서를 집대성 해놓은것입니다.
- 규장전운 : 한자 음운서(한자 음운을 → 한글로 기록함)
- 국조보감 : 국왕 열람용으로 「국조보감」을 집대성해 놓은 자료입니다.
그 외에 탁지지(호조 사례집), 추관지(형조 사례집), 춘관지(예조 사례집), 규장각지(규장각 사례집), 홍문관지(홍문관 사례집), 초계문신제 시행 등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조선시대 왕 경종, 영조, 정조의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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