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1863~1873)은 본명은 이하응으로 안동김 씨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피락 호 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종이 어린 나이(이명목 12세)로 즉위할 때(1863) 국왕생부라는 이유로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때부터 10년간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정세는 안동김 씨, 풍양조 씨에 의한 세도정치였습니다. 세도 가문의 정권 장악,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시대였습니다. 왕권 약화는 물론이고, 통치 질서는 붕괴되었습니다. 또한 삼정의 문란으로 민생 파탄까지 일어나 농민 봉기까지 일어나는 시기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농민봉기(홍경래, 임술농민봉기)가 극심하게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10년간 섭정하기도 했는데, 국내, 국외적으로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으며, 왕권강화책과 민생안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흥선대원군의 국내정치
- 정치는 세도정치시대 (안동김씨, 풍양조 씨에 의한)였습니다.
- 경제는 삼정이 문란 전정(토지세), 군정(군포징수), 환곡(춘대추납, 고리대가 성행)의 피해가 증가했습니다.
- 사회적으로는 홍경래난과 임술농민봉기가 발생하였습니다.
cf) 홍경래 : 몰락한 양반 + 농민, 광산노동자, 평안도 서북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습니다.
임술농민봉기: 몰락한 양반 유계춘이 주도 → 경상우병사 백낙신 부정 → 진주민란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 개별적 봉기 → 박규수에 의해 섬정이정청이 설치되었지만, 곧 폐지되었습니다.
1-1. 흥선 대원군의 섭정- 통상 수교 거부 정책
1. 병인박해(1866.1) : 흥선 대원군은 프랑스를 이용(천주교를 허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천주교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처형당합니다. 신자 8,000여 명이 처형당하기도 합니다.
2. 제너럴 셔먼사건(1866.7):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대동강 하구에 진입하여 횡포를 합니다. 당시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와 평양군민이 저너럴셔먼호를 소각합니다.
3. 병인양요(1866.9):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가 침입합니다. (로즈제독, 강화도) 프랑스가 침략. 문수산성은 한성근, 정족산성은 양헌수가 지켜습니다. 프랑스가 퇴각 중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갔습니다.
4.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4):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 요구를 거절당함니다.이때 남연군의 묘를 도굴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를 계기로 조선 내 반외세 감정이 고조됩니다.
5. 신미양요(1871.4): 제너럴셔먼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침입합니다. (로저스 제독, 강화도)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합니다. 어재연. 어재순 형제의 항전. 광성보 전투에서 장수 수자기를 빼앗깁니다.
6. 척화비 건립(1871):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신미양요 이후 적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됩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철거됩니다.
2. 흥선대원군의 국외정치
이앙선의 잦은 출몰과 천주교의 확산, 서양의 통상 수교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습니다.
- 중국: 난징조약(1842), 베이징조약(1860) ㅡ 중국 개항, 양무운동(중체서용)이 발생
- 일본: 미국에 개항(1854), 메이지 유신(1868, 문명개화론 영향) 발생
- 조선: 이앙선출몰(1832, 영국 암허스트호 황해도), 천주교가 확산 - 근대화 추구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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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의 과제는: 반침략. 자주화 + 반봉건. 근대화 ▶ 근대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거였습니다.
∴ 조선후기 사회변화는 정치는 세도정치, 경제는 자본주의 맹아, 사회는 신분제 붕괴, 문화는 서민문화등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발전했습니다.
3. 흥선대원군의 왕권강화책
세도 가문(안동 김씨)세력을 축출하고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추구하였습니다. 비변사를 축소. 폐지하고 정무는 의정부에서 군무는 삼군부에서 이행하였습니다. 또한 법전 《대전회통》《육전조례》를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1865~1868에는 경복궁 중건 사업도 시행하였는데, 이는 양반들의 분만이 거세졌습니다. 원납전으로 강제 기부금도 징수하게 하고, 양반들의 묘지림도 벌목하였으며, 결두전도 1 결당 1백 문 추가 징수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불만도 있었는데, 당백전을 발행하여 상평통보 100배 고액화폐도 발행하여 실제 유통 가치는 상평통보의 5배로 화폐 가치는 하락, 물가는 상승시켜 서민 경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또한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들을 강제 부역에 동원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당백전 발행 중단 이후 청나라 동전을 수입하여 유통시켰는데, 이를 청전 유통, 4대 문 통행세도 징수하였습니다.
4. 흥선대원군의 민생 안정책
전정으로는 양전사업 실시로 은결을 색출하고 군정은 동포제에서 호포제로 국가재정확보목적으로 양반의 반대가 높았습니다. 환곡으로는 사창제즉 자체적 곡물대여 제도로 사수를 임명해 마을을 자치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서원 철폐는 600여 개에서 47개 사액 서원 빼고 모두 다 철폐하였습니다. 화양 서원의 만동묘 철폐 했지만 최익현. 이항로 등의 상소로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목패 발행금지는 화양 서원의 화양 목패가 악명이 높아졌으며 서원의 노비와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였습니다. 이는 민생 안정 + 국가 재정 확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 은결은 숨어있은 땅으로 토지대장에는 없는 땅을 의미합니다.
결두전: 토지에 세금, 토지 1 결당 1백 문의 특별세를 부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보단: 창덕궁, 만동묘(노론의 근거지를 의미) - 대표적으로 충북괴산 송시열(소중화 사상)
5. 흥선대원군 개혁 정치의 결론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의 의의는 전통적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체제 내 개혁으로 복고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까지가 19세기 흥선대원군의 업적에 대해서 서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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